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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신예찬 — 에라스뮈스

by Diorson 2026.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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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 에라스뮈스

직전은 아니고 얼마 전에 읽었던 [더 티처]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해서, 요즘은 어느 정도 검증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고전 문학만 읽고 있다. 이번 책을 끝으로 고전 문학은 그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새로운 책을 고르기 귀찮아서 결국 고전 중 하나를 고를 것 같기는 하다.

[우신예찬]. 제목만 들어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우신을 예찬한다? 분명 서양의 책이기 때문에 우신은 기독교의 신이 아닌 다른 신들을 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편협한 사고에서 처음 떠오른 것은 이슬람교, 그리고 기독교 이전 시대의 신들인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 북유럽 신화의 신들, 이집트의 신들이었다.

이슬람교를 떠올린 것은 단순히 나의 스테레오타입 때문이고, 그리스·로마 신화가 떠오른 것은 예전에 읽었던 단테의 [신곡]의 영향인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우신예찬]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하지만 딱히 어떤 특정한 신을 우신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리석음'을 뜻하는 단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담겨 있다고 하지만, 한국어로는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아무튼 어리석음의 신이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하고, 작가는 그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 같은 형식이다. 마치 그 유명한 성경이나 꾸란처럼 말이다.

작가는 우신의 입을 빌려 세상 모든 것을 풍자한다. 인간은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나라를 다스리는 귀족이나 군주들 역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거기에 더해 기독교에 관해서도 경전에 쓰여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풍자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건 내가 읽은 책의 버전에서는 이러한 풍자가 끝나고 나면, 책을 쓴 뒤 받은 비난에 대해 저자 자신을 변호하는 편지들이 잔뜩 실려 있다는 점이다. 읽다 보니 책의 내용보다 오히려 자신을 변호하는 내용이 더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우신예찬]이라는 책이 앞에서 풍자한 부분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뒤에 실린 해명까지 포함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풍자 부분에서도 가장 뒤에 나온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고, 해명하는 부분에서도 맨 뒤에 나온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몇 가지 인상 깊은 구절들을 아래에 적었다.

"하지만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 걱정을 신들에게 맡겨 두고 염려와 고민을 치워 둔 채, 영혼에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이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과거와 다르게 직접 뽑은 지도자도 마치 신처럼 만들어 버리는 재미있는 경향이 있다.

"사랑의 광기야말로 모든 것 가운데 최고의 행복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미치도록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살지 않으며 오로지 사랑하는 것에 빠져 살며, 멀리 자기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는 것에게로 빠져들수록 그만큼 더욱 행복해합니다."

나도 이런 열정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정열이라면 주머니가 비어도 행복할 것 같다.

"옛말에 '같이 마시고 다 기억하는 놈을 나는 증오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를 새롭게 고쳐 '다 기억하는 청중을 나는 증오한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 안녕히! 박수 치라! 행복하라! 부으라, 마시라! 나 우신의 교리에 탁월한 여러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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