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한강 작가 작품
희랍어 시간 작품소개: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말語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眼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드디어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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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을 다 읽고 나서도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줄거리가 아니라, 고요한 감각과 조용한 떨림으로 기억 속에 남는다.
한강 작가의 소설 『희랍어 시간』을 다 읽은 후에도, 내 안에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조용한 교감 속에서,
나는 ‘몸’과 ‘존재’, 그리고 ‘사유’에 대해 쓰고 있는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중에서도 아래의 문장은 내 마음을 꿰뚫듯 남았다.
“네가 나를 처음으로 껴안았을 때, 그 몸짓에 어린, 간절한, 숨길 수 없는 욕망을 느꼈을 때, 소름끼칠 만큼 명확하게 나는 깨달았던 것 같아.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그 시절이 지나가기 전에 너를, 단 한 번이라도 으스러지게 마주 껴안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결코 나를 해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끝내 무너지지도, 죽지도 않았을 텐데.”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몸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동시에 강렬한 욕망의 매개체가 되는지를 실감했다.
부드럽고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이루어진 신체는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났다는 그 고백.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몸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려는 절실한 갈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갈망이 종종 꺾이고, 무시되고, 외면당하는 순간들 앞에서
몸은 더없이 슬프고 조용한 항의의 장이 된다.
그 ‘몸의 슬픔’은 단순히 감정의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총체이자, 사유의 근거다.
그리고 이 문장은, 그 사유의 깊이를 마치 선언처럼 펼친다.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바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아레테를 지니고 있는 거 아니겠니?”
삶을 치열하게 사유하는 것은 철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언제든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람,
고통의 피부 위에 삶을 붙들고 선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강 작가의 문장은 이처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슬픔과 상처 속에서도 사유는 가능하고, 오히려 그것이 가장 순도 높은 사유의 형태라고.
『희랍어 시간』은 죽어가는 언어, 말이 사라진 공간, 어둠 속의 눈빛,
그리고 손끝에서 감지되는 온기까지 —
언어 이전의 감각과 언어 이후의 사유를 동시에 그려낸 소설이다.
말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껴안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욕망은 때때로 고통스럽지만,
결국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조건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소름돋도록 문장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정말 잘쓴다 라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책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 사랑의 말, 말이 되지 않은 사랑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구절이다.
한 사람을 향한 갈망과 욕망이, 비언어적인 광기로 터져 나오는 장면들.
버려지고, 외면당하고, 폭력에 의해 끊긴 사랑임에도 몸을 밀착시키며 남아 있으려는 그 절실함은 슬프고도 처연하다.
그 장면들을 읽으면서, 나는 그것이 결코 한 편의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삶 전체를 뒤흔드는 부서짐이라는 걸 느꼈다.
"몸은 껴안도록 태어났다"는 문장에서,
"그래서 껴안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와 한계를 나는 함께 안았다.
■ 목소리와 침묵 사이의 정체성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퍼져나가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단어들, 나보다 많은 걸 알고 있는 단어들에 공포를 느껴요.”
소설 속 ‘그녀’는 말을 잃은 사람이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를 말로 퍼뜨리는 것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
쾌활하고 자신감 있는 표정을 강요받았던 시절, 웃고 인사하는 것이 하나의 노동처럼 느껴졌던 사춘기.
모자를 눌러쓰고,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가장 무뚝뚝한 표정으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었던 그 날들.
그건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내 안의 조용함을 지키기 위한 방어였던 것 같다.
■ 귀국자, 혹은 이방인의 고독
“이제야 내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에겐 웃거나 인사하지 않는 문화 속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이 문장에서 나는 유독 오래 머물렀다.
해외에서 익힌 미소와 거리감, 그 안에 담긴 교양과 고립이 너무 익숙했다.
한국 사회의 무표정한 익명성 속으로 다시 스며드는 것.
그 과정에서 느끼는 아이러니한 자유와 절망.
‘이제 괜찮다’는 감정과 동시에 ‘이제 나는 더 이상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구나’라는 상실이 겹쳐오는 순간.
그건 단지 타국에서 돌아온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이들 모두가 겪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 감각의 상실, 그러나 연결되는 감정
“안경이 깨졌어요. 나는 시력이 아주 나쁩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고대 그리스어 수업을 통해 교감한다는 설정은, 사실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징은 너무도 절묘하다.
감각을 잃는 사람들, 하지만 동시에 더 섬세한 감각으로 서로를 감지하려 애쓰는 사람들.
눈으로 보지 못해도, 말로 설명하지 못해도, 글자 하나를 또렷하게 읽고, 손으로 닿아보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끝으로
『희랍어 시간』은 나에게 언어를 되돌아보게 만든 작품이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하지만 그 침묵은 감정의 결핍이 아니라, 감정의 밀도에서 비롯된다.
이 소설을 읽은 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와 조심스레 소통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 단어로 마음을 건네는 사람들, 침묵으로 마음을 받아주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 희랍어처럼 오래되었지만 사라지지 않는, 조용하고도 단단한 언어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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