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0여 년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1Q84』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책을 사는 대신 도서관을 주로 이용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1Q84』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예약 대기만 걸어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대학생 때 읽었던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빵가게 습격 사건』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은 모두의 책장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신작 소식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것도 당연했다.
우연히 무료로 『1Q84』를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시리즈물이나 두꺼운 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다음 권이 궁금해지는 조바심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라카미의 글은 묘한 힘이 있었다. 그의 세계 속에서는 조바심 대신 오롯이 몰입할 수 있는 현재만이 존재했다.
책이 선사하는 아날로그의 즐거움
오랜만에 읽은 무라카미의 소설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이야기 속에는 약간의 불쾌함, 성장의 단면, 그리고 알 수 없는 판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한동안 전자책만 읽다가 오랜만에 종이책을 손에 쥐고 다니니, 과거의 추억과 함께 독서의 아날로그적인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에는 아오마메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덴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종교단체 '선구'가 등장한다. 선구와 관련된 후카에리라는 인물이 가져온 소설은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다층적인 구조가 『1Q84』를 더욱 독특하게 만든다.
여운과 의문으로 가득한 독후감
『1Q84』는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지만, 끝난 후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았다. 많은 질문이 남겨진 채로 이야기가 끝나버린 듯했다. "왜 그는 거기서 죽었는가?", "누구와 연결된 이야기였던가?" 같은 질문들은 답을 얻지 못한 채 머릿속을 맴돌았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은 독특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루이 암스트롱의 W.C. 핸디 아틀란타 블루스 등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배경음악처럼 떠올랐다. 음악과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한층 더 몰입하게 되는 경험을 선사했다.
마음에 남은 문장들
책 속에서 인용된 문장들은 때로는 철학적이고 때로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마음을 울렸다.
- "어떻게 태어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을지는 선택할 수 있어."
-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 "행동의 결여를 후회했다. ...그저 약간의 용기를 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덴고는 그러지 못했다."
- 사람들은 대부분 하지 못한 일들을 후회한다고 한다. 나 역시 행동의 결여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 "이 젖가슴 외에 나의 무엇이 남겨지는 걸까. 물론 덴고의 기억이 남는다."
- 결국 기억 속의 자신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다."
-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으로, 인간 본성의 유동성을 잘 묘사한다.
책이 남긴 여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항상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1Q84』는 읽는 동안의 몰입감도 대단했지만,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과 감상을 남겼다.
책은 단순히 즐거움을 넘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며 이 책에서 느낀 감정들이 희미해졌을지 몰라도, 그것이 내 안에 어떤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확실하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쿠가와 이에야스: 천하를 이루기까지의 긴 여정 (0) | 2025.01.24 |
---|---|
바람난 의사와 미친 이웃들 - 니나 리케 (0) | 2025.01.22 |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 - 유영광 (1) | 2025.01.21 |
맥베스 - 윌리엄 셰익스피어 (1) | 2025.01.20 |
외사랑 - 히가시노 게이고 (0) | 2025.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