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정말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고, 특히 한글이 가진 특유의 뉘앙스를 외국어로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이 강했다. 그러나 한강은 그러한 편견을 깨고 한국 문학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 뉴스를 접한 순간 당장 한강의 작품을 다시 읽고 싶었지만, 당시 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대하소설을 읽고 있었다. 워낙 긴 작품이라 쉽게 중단할 수도 없었고, 끝을 보고 나서야 다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완독한 직후 곧바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펼쳤다.
『소년이 온다』 줄거리 요약
이 소설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국가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동호'는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 활동을 하던 중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후 시체를 수습하는 역할을 맡게 된 그는 시신이 가득한 체육관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군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은 동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과 트라우마, 그리고 죽은 자들의 시점까지 다루며 광주민주화운동의 잔혹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동호의 어머니, 희생자들의 유가족, 고문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한때 시민군이었지만 결국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까지… 이 책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의 비극을 담고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과 나의 생각
1. 애국가와 태극기를 둘러싼 모순
📖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 정말 그렇다. 군이 시민을 학살했는데도, 죽은 자들은 여전히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로 덮인다. 마치 지금 현실에서도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미국 성조기를 들고 집회를 하는 모습을 볼 때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이었다.
2. 군부 쿠데타와 국가 폭력
📖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 2024년 12월 초,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만약 지금 현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서도 군이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러웠다.
3. 살아남은 자의 고통
📖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 이 문장이야말로 『소년이 온다』의 핵심이 아닐까. 국가 폭력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장례식을 치르지도 못한 채, 평생을 '죽은 이를 기리는 삶' 속에서 살아간다.
4. 인간의 잔혹함과 역사의 반복
📖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잔혹한가? 아니면 특정한 상황에서만 잔혹해지는 걸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지만, 인간은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5. 자살과 생존의 의미
📖 “그녀는 스물네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할복도 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못하는 무사가 결국 단식을 선택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철학과도 연결된다. 카뮈는 "자살은 너무 뻔한 답이므로, 그 과정에 이르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삶의 무의미함을 인정하면서도, 신체적 자살이 아닌 단식을 통한 저항을 보다 본질적인 해답으로 보았다. 단식을 통한 죽음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도 철학적인 형태의 저항이라는 점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마무리: 한강의 문학과 『소년이 온다』가 전하는 것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광주의 비극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국가 폭력, 트라우마,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깊이 있게 다룬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렸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깊은 분노와 슬픔이 차올랐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고, 감정을 숨기기 위해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곤 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도 그러했듯, 독자에게 강렬한 불편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진실이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단순한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상처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이제 한강의 다른 작품도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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