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 #미야베미유키
'삼귀'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도쿄 기담집’**이 떠올랐다. 한때 이런 으스스하고 기묘한 이야기 책들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오랜만에 그 시절의 감각을 되살리고 싶어 책을 집어 들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귀신과 사람들
‘삼귀’는 기묘하지만 섬뜩하지 않고, 귀신이 등장하지만 무서움이 아닌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다. 주막 같은 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남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 첫 번째 이야기: 귀신이 도시락 가게 영업을 돕는 이야기
- 두 번째 이야기: 이별한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문’을 여는 이야기
- 세 번째 이야기: 고립된 마을의 금기를 처리하는 귀신
- 네 번째 이야기: 가문을 수호한 귀신과 세대교체
이 네 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귀신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의 삶과 어딘가 맞닿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귀신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
한국의 귀신이 대부분 **‘한이 서린 존재’**로 그려진다면, 일본의 귀신들은 다소 다르다. 공포보다는 동거와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저혈당이 생각날 만큼 귀엽기까지 했다. 귀신이 도시락에 손을 대며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인간의 이야기구나.”
남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가슴속 이야기를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들려질 때, 그들은 비로소 **‘평온’**을 얻는다.
심리상담소와의 연결
책을 다 읽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
‘삼귀’는 어쩌면 ‘심리 상담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
- 평생 안고 살기에는 너무 무겁고 괴로운 비밀
그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위안을 얻는다.
지금 시대의 **‘심리 상담소’**나 **‘정신과 치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가게. 그곳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의 평온을 이어주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
-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은 때로 인생의 한 귀퉁이에 스며들어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 주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니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건 곤란하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과의 대화 기회는 줄어들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 나 역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어 토해내고 싶어진다. 무덤까지 가져가기는 너무 괴롭지 않은가. - “천연두에 걸린 흔적은 포창신에게 사랑받은 증표이기도 하다.”
역병과 병마조차 신의 축복으로 바꾸어내는 일본 전통의 사고방식이 흥미로웠다. 나쁜 일을 단순히 나쁜 일로만 남기지 않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다고 해석하는 태도는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 “별채에 불이 켜지면 죽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마치 여관 같은 것이지.”
귀신이 쉬어가는 여관이라는 설정은 묘하게 따뜻하면서도 쓸쓸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가 이어지는 공간. 그곳에서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책을 덮으며
‘삼귀’는 귀신 이야기의 탈을 쓴 **‘사람의 이야기’**였다.
-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과 상처
-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찾아오는 평온
책을 읽는 동안은 몰랐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이 책이 남긴 울림을 느꼈다. 나 역시도 어딘가에 이야기하고 싶지만 숨겨둔 말들이 많다.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있다면, 나도 그곳을 찾아가고 싶다.
“무덤까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 그 무언가를 내려놓는 곳이 바로 삼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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