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귀 #미야베미유키

diorson 2024. 12. 30. 08:12

#삼귀 #미야베미유키

'삼귀'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도쿄 기담집’**이 떠올랐다. 한때 이런 으스스하고 기묘한 이야기 책들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오랜만에 그 시절의 감각을 되살리고 싶어 책을 집어 들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귀신과 사람들

‘삼귀’는 기묘하지만 섬뜩하지 않고, 귀신이 등장하지만 무서움이 아닌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다. 주막 같은 곳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남에게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 첫 번째 이야기: 귀신이 도시락 가게 영업을 돕는 이야기
  • 두 번째 이야기: 이별한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문’을 여는 이야기
  • 세 번째 이야기: 고립된 마을의 금기를 처리하는 귀신
  • 네 번째 이야기: 가문을 수호한 귀신과 세대교체

이 네 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귀신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인간의 삶과 어딘가 맞닿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귀신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

한국의 귀신이 대부분 **‘한이 서린 존재’**로 그려진다면, 일본의 귀신들은 다소 다르다. 공포보다는 동거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저혈당이 생각날 만큼 귀엽기까지 했다. 귀신이 도시락에 손을 대며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인간의 이야기구나.”
남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가슴속 이야기를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런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들려질 때, 그들은 비로소 **‘평온’**을 얻는다.


심리상담소와의 연결

책을 다 읽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
‘삼귀’는 어쩌면 ‘심리 상담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가슴속 응어리
  • 평생 안고 살기에는 너무 무겁고 괴로운 비밀

그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위안을 얻는다.
지금 시대의 **‘심리 상담소’**나 **‘정신과 치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가게. 그곳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의 평온을 이어주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

  1. “사람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것은 때로 인생의 한 귀퉁이에 스며들어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보여 주는 일이나 마찬가지이니 아무래도 많은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건 곤란하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과의 대화 기회는 줄어들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 나 역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굳이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어 토해내고 싶어진다. 무덤까지 가져가기는 너무 괴롭지 않은가.
  2. “천연두에 걸린 흔적은 포창신에게 사랑받은 증표이기도 하다.”
    역병과 병마조차 신의 축복으로 바꾸어내는 일본 전통의 사고방식이 흥미로웠다. 나쁜 일을 단순히 나쁜 일로만 남기지 않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다고 해석하는 태도는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3. “별채에 불이 켜지면 죽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 마치 여관 같은 것이지.”
    귀신이 쉬어가는 여관이라는 설정은 묘하게 따뜻하면서도 쓸쓸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가 이어지는 공간. 그곳에서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책을 덮으며

‘삼귀’는 귀신 이야기의 탈을 쓴 **‘사람의 이야기’**였다.

  • 남에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과 상처
  •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찾아오는 평온

책을 읽는 동안은 몰랐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이 책이 남긴 울림을 느꼈다. 나 역시도 어딘가에 이야기하고 싶지만 숨겨둔 말들이 많다.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어줄 곳이 있다면, 나도 그곳을 찾아가고 싶다.

“무덤까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이야기, 그 무언가를 내려놓는 곳이 바로 삼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