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자 #아니에르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타이틀은 늘 나를 위축시킨다. 그 권위에 쉽게 설득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한 여자’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읽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첫 페이지부터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
가장 가까운 존재의 상실을 담담하게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내 삶 속에서 직면했던 충격적인 사건들과 어딘가 겹쳐졌다. 그런 연결점 때문에 책의 초반부는 견디기 힘들었다. 한동안 책을 덮어두고 다른 책으로 마음을 돌려야만 했다.
죽음과 상실을 마주하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이 문장은 마치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카뮈가 존재에 대한 철학적 담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라는 구체적이고도 내밀한 존재를 통해 상실과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 죽음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작가의 문장은, 읽는 내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작가의 경험은 어쩌면 모두가 한 번쯤 겪을 보편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기억 속의 어머니와 그녀의 삶
책은 단순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생애, 그리고 그 생애가 속했던 시대를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녀의 부모가 딸이 마을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불행의 근원이라는 그 당시의 확신.”
어머니는 단순히 ‘엄마’로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그녀는 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이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끊임없이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 그녀의 모습을 조각한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역할로 규정된 여성으로서의 모습, 또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어머니로서의 모습.
인상 깊었던 문장들
- “어떤 여자가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여자는 아직 살아 있는데 내 어머니는 죽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의 혼란. 누군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에도 가장 가까운 사람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불합리함이 가슴을 더 무겁게 만든다. - “그 주 내내 아무 데서나 눈물을 흘리는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전, 현실이 아닌 꿈속에 머물러 있는 듯한 상태.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다시 상실을 떠올려야 하는 고통은, 읽는 이의 마음마저 찢어지게 한다. - “어머니는 자기 자체로는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자신이 주려는 것으로 사랑받기를 바랐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문장. 우리는 종종 ‘주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지만, 그것이 그녀 자신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가슴 아프다. -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를 돌볼 수 없었다는 죄책감.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변명조차 상처가 된다. 이 문장은 나 역시 앞으로 경험할지도 모를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죽음 뒤에 남겨진 것들
‘한 여자’는 어머니라는 개인을 넘어, 가족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기록하며 작가는 그녀의 삶과 그 삶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어머니가 단순히 ‘나의 엄마’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걸어온 여정이다. 그리고 그런 여정을 바라보며 작가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읽고 난 후의 여운
책을 덮고 나니,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어머니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녀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가 미처 알지 못한 그녀의 시간들이 이 책을 통해 흐릿하게나마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한 여자’는 단순히 죽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사랑, 그리고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담담하게 마주한 기록이다. 읽는 동안 마음이 무겁고, 때로는 책장을 덮고 싶을 만큼 괴로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을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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