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드케랑갈
심장 박동 이야기, 젊은 서퍼들, 너무나 미국 감성이어서 이해할 순 없지만 심장 박동과 서핑이라니 누군가 한 명이 크게 다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며 읽기 시작한다.
환자를 한 명 봐주셔야겠어요. 10시 12분에 ....라는 문구는 그레이 아나토미 반사작용을 일으켰다. 응급 환자를 맡으려고 달려드는 닥터 그레이, 오말리 등 캐릭터들이 떠올랐다.
"병원에서 소생 의학과는 갈림길에 선 생명, 절망적인 코마, 예고된 죽음들을 맞아들이며, 그처럼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에 걸쳐 있는 육신들을 수용하는 별도의 공간이다.".... 그것은 사진이 필요한 존재이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자율적이며, 주어진 행동반경 내에서 의료 행위의 계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동원되었으며, 경계심을 늦추기 않고 책임감을 갖춘 존대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벌집 속의 방에 처박힌 듯한 고립감을, 그 특별한 성질의 시간을, 몸 안에서 서서히 차오르며 몸을 내달리게 하고 그 감각을 벼리는 은밀한 흥분제와 같은 피로감을, 그런 모든 에로틱한 혼란을 사랑한다. 그 떨리는 침묵을 사랑한다. 그 흐릿한 빛들도(희미한 빛에 잠겨 깜빡거리는 기계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모니터들. 혹은 라 투르의 그림 곳 촛불 같은 책상 램프. 예를 들자면 라 투르의 [갓난아기]) 그리고 당직의 물리적 환경도. 그 고림 된 분위기, 그 폐쇄성. 블랙홀을 향해 발사된 우주선이나, 심해를 행해, 라미란 제도의 해저를 향해 내려가는 잠수정과 닮은 업무. 그런데 레볼은 오래전부터 거기에서 또 다른 것을 길어 올리고 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적나라한 의식을 말이다. 그건 권력에 대한 의식이나 과대망상적 흥분이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다. 그러니까 그의 동작들을 제어하고 그의 결정들을 걸러 내는 명철함의 작용. 냉정 함의 분출."
위 문단은 읽으면서 호흡이 길지만 간결한 것 같고 쉼표와 마침표가 많지만 지루하지 않고 몰입돼서 읽히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파블로네루다 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이렇게 매 장면을 세밀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장점도 있었지만 읽다 보니 호흡이 너무 느려서 답답해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증하겠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숀이다. 그러자 토마 레미주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다. 몸이 흔들리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마치 피가 빠르게 돌기라도 하는 양 열기가 확 피어나며 흉부가 확장된다. 그가 갑자기 그들을 향해 다가간다. 고맙습니다. 마리안과 숀은 눈길을 떨어뜨린다...... 그들이 방금 저지른 일에, 그들이 막 입 밖에 낸 일에 압도당한 상태다..... 전화가 울린다, 레보ㅓㄹ이다 토마가 재빨리 <좋습니다>라고 알린다, 숀과 마리안이 알아챌 수 없게 암호처럼 빠르게 흘러나온 네 음절.......
그 책에는 영국의 흔한 장례 풍습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이제 땅에 묻잏 사람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줬다. 혹시라도 밑에 묻힌 사람이 깨어난다면 지표면에 놓인 종을 울릴 수 있게 끈화 묶어 놓은 반지였다.> 그런데 장기 적출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죽음의 기준에 대한 정의가 그 시원적 공포와 뒤섞인 것이다. 레미주가 몸을 돌려 숀을 마주 보고 허공에 엄지와 검지로 엄숙한 신호를 그린다...... 그레이아나토미에서 데릭이 안타깝지만 모든 걸 이해한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면 그레이가 상황을 설명하고 가족이 우는 장면이 그려지는 이 짧은 순간이 가족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 그려낸 것 같다. 과거 죽음을 판정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을 때 무덤 속에서 깨어난 사람을 위한 종을 달아둘 만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는데, 기계에 의존하지만 살아있는 자식의 장기를 꺼내는 것을 동의하는 과정은 목이 매여 읽는데 거부감을 주었다.
직전에 읽은 책들은 웃으며 물 흐르듯 넘길 수 있는 책이었던 반면에 이번 책은 너무 진지하고 너무 세밀하고 밀도 있게 묘사되어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십 대 때 읽었더라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성숙해가고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던 몇몇 일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읽다가 속이 뒤집히기도, 눈물이 날것 같기도 하여 읽는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왜 이 책을 여름휴가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하는지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장면들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면서 주변인들과 당사자들의 심정을 억지로 느끼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다. #오렌지 시계태엽에서 강제로 눈을 뜨고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는 느낌도 드는 듯했다.
너무 생생한 느낌과 우리나라의 장기기증 후 사후 처리 뉴스가 생각나며 '나는 절대로 장기기증은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이기적이지만 솔직한 생각도 많이 들었다.
다음 책은 가볍고 유쾌한 책을 읽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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